코인을 구매할 때 예상했던 것 보다 수량이 적게 들어와 당황한 적 여러 번 겪었을거라 생각한다. 이게 모두 슬리피지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번 내용에서 의미나 작동 원리 등의 자세한 개념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코인 슬리피지의 개념
코인 현물이나 선물 등과 같은 모든 자산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주문을 넣었을 때 가격이 미끄러져 원래 기대했던 가격과 다른 가격에 체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슬리피다.
예를 들어 1 비트코인을 5,000만 원에 매수하려고 했으나 실제로는 5,050만 원에 체결되었다면, 그 50만 원 차이 만큼을 슬리피지가 발생했다고 부른다.
여기서 양수 혹은 음수로 나타낼 수 있는데, 위는 50만원 만큼의 손해를 봤으며 -1% 만큼의 슬리피지가 발생한 것이다.
실시간으로 변동되는 시장은 주문을 넣는 순간과 체결되는 순간 사이에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슬리피지는 보통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예상보다 유리한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긍정적인 슬리피지라 부른다.
만약 매도 주문을 했는데 갑작스러운 급등으로 인해 의도한 가격보다 높게 팔리는 경우가 이에 포함된다. 다만 대부분은 슬리피지에 의해 손실을 보고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결론은 시세의 변동성이 아주 높은 코인일수록 슬리피지로 인한 손실률이 높아진다고 보면 되는데, 아래에서 몇 가지 내용을 통해 더 확실하게 이해해보자.
호가창으로 알아보는 슬리피지
오더북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인 거래소의 호가창에는 매수 대기 주문과 매도 대기 주문가 가격대별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현재 A코인의 즉시 매수 가능한 최저 매도 가격이 100원에 50개, 그 다음 호가가 101원에 50개, 102원에 50개씩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태에서 투자자가 시장가로 120개를 한 번에 매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파란색 막대는 각 가격대의 매도 호가 물량을 나타낸다. 투자자가 120개를 시장가 매수하자, 100원에 50개, 101원에 50개를 모두 체결하고, 102원 호가에서 20개를 체결하였다.
이로써 최종 체결 평균가는 약 101.0원 수준으로 올라가며, 처음 기대한 100원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하게 된다. 나머지 102원 호가에는 30개 물량이 잔여로 남았다. 이러한 체결 가격 차이가 슬리피지다.
위의 호가창 시뮬레이션을 통해 슬리피지 발생 구조를 이해해 보자. 처음 투자자는 100원에 120개를 사길 원했지만, 실제로는 100원 50개 + 101원 50개 + 102원 20개로 체결되었다.
호가창에 100원과 101원 물량만으로는 120개를 다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평균 매수 단가가 약 101원이 되어, 의도했던 가격(100원)보다 높아졌다.
이처럼 시장가 주문으로 한꺼번에 대량 체결할 때 호가창의 여러 가격대에 걸쳐 거래가 이루어지며, 체결 가격이 처음 가격보다 불리하게 변하는 것이 슬리피지다.
호가창 관점에서 보면, 슬리피지는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가격 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도 잔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규모 매수 주문이 호가를 타고 올라가며 체결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이 미끄러지는 것이다.
반대로 대규모 매도 주문의 경우 매수 호가를 타고 내려가며 체결되어 원래 가격보다 싼 값에 팔리게 된다.
필자도 과거에 유동성이 낮은 코인을 시장가로 많이 사려다가, 호가 몇 칸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바람에 체결 가격이 급등해버려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이렇게 호가창의 깊이에 따라 슬리피지가 결정되므로, 거래 전 해당 코인의 호가창 상황을 살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시장가와 지정가 주문의 슬리피지 발생 원리
어떤 주문방식이 슬리피지를 유발할까? 일반적으로 시장가 주문을 사용할 때 슬리피지가 발생하며, 지정가 주문에는 슬리피지가 없다.
시장가 주문은 주문 즉시 체결을 최우선으로 하여 호가창에 나와 있는 가격으로 바로 매매가 이루어진다.
앞서 본 것처럼 시장가 매수의 경우 현재 나와 있는 매도 물량을 순서대로 모두 사들이기 때문에 내가 체결받는 가격이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다.
매수자가 호가를 쫓아가는 형태라 생각하면 된다. 반면 지정가 주문은 원하는 가격을 지정하여 그 가격에 매도 희망자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주문이다.
지정가 주문은 호가창에 내 주문을 올려놓는 행위(메이커 주문)이므로, 내가 제시한 가격에만 체결되며 슬리피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지정가 주문은 체결 보장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원하는 가격에 팔 사람이 없으면 영원히 거래가 안 될 수도 있고, 체결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다.
한편 시장가 주문은 테이커 주문으로 즉시 체결되지만, 급한 만큼 비용(슬리피지)을 치를 수 있다. 결국 속도 vs 가격의 트레이드오프인 셈이다.
대량 주문의 경우 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작은 금액으로 거래할 때는 슬리피지가 미미할 수 있지만, 수량이 커질수록 시장가 주문의 슬리피지 폭은 커지게 마련이다.
(체결가격 차이: 슬리피지 약 2%)
동일한 코인을 거래할 때, 시장가 주문은 즉시 거래가 체결되지만 2% 높은 가격(빨간 막대, 102 KRW)에 매수된 반면, 지정가 주문은 원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져 100 KRW에 체결되었다.
시장가 주문은 속도가 빠른 대신 이렇게 슬리피지로 인해 가격 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지정가 주문은 슬리피지가 발생하지 않지만 원하는 가격에 매도자가 나타나야 체결된다.
위 차트를 보면, 시장가 주문은 체결 가격이 102 KRW로 올라가 있고 지정가 주문은 100 KRW 그대로 체결되었다.
당연히 시장가 주문 쪽에 2% 가량의 슬리피지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실전에서는 시장가 주문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급격한 가격 변동이 예상될 때는 속도가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재 뉴스로 가격이 치솟는 순간엔 지정가 주문 걸어두다 기회를 놓치느니, 약간 불리한 가격이라도 시장가로 빨리 진입해 상승 랠리를 타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결국 상황에 맞게 주문 유형을 선택하되, 시장가를 쓸 땐 슬리피지 고려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슬리피지를 이해할 때 시간적 지연도 한 몫 한다. 주문을 넣고 체결되기까지의 몇 초 사이에 가격이 움직여서 생기는 슬리피지도 있다.
특히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는 블록체인 트랜잭션 확인 지연으로 인해 슬리피지가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중앙화 거래소에서는 실시간 매칭이 이뤄지지만, DEX에서는 블록 생성 시간 동안 가격이 변동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DEX에서는 슬리피지 허용치 설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초단타 매매를 하거나 변동성이 극심한 장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도 가격이 뛰어 원하는 가격과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한 코인의 가격이 주문 전에는 100 KRW이었지만, 대량 시장가 주문이 들어간 직후 102 KRW로 상승했다.
투자자는 주문 전에는 100 KRW에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주문 후 체결된 가격은 2% 오른 102 KRW였다. 이처럼 주문 전후로 가격이 변동하여 체결 가격이 불리하게 바뀌는 현상이 슬리피지다
위 그래프는 슬리피지로 인한 가격 변화를 시각화한 것이다. 주문 전 100원이었던 가격이 주문 후 102원이 된 모습에서 슬리피지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꼭 대규모 주문이 아니더라도, 시장가로 급하게 매매하면 체결 순간 약간이라도 가격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특히 시장 변동성이 큰 경우 슬리피지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중급 투자자라면 이러한 시장가 주문의 메커니즘을 숙지하고, 언제 시장가를 쓸지, 언제 지정가를 고집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슬리피지가 실현 손익에 미치는 영향
슬리피지는 거래 비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투자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현 손익(PnL)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간단한 예시로 알아보자.
예를 들어보자. B코인의 현재 가격이 1,000원이고, 투자자는 5% 수익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래는 1,000원에 사서 1,050원에 팔면 5% 수익일 것이다.
그런데 시장가 매매로 각각 1%의 슬리피지를 매수와 매도 시에 겪었다고 가정해 보자 (매수는 1% 높게, 매도는 1% 낮게 체결). 매수는 1,010원에 체결되고 매도는 1,039.5원(1,050원의 99%)에 체결될 것이다.
결국 실제 매매 차익은 약 2.9%에 불과하다. 5% 수익을 기대했지만 슬리피지 2%로 인해 이익이 거의 반토막난 셈이다. 만약 목표 수익이 작았다면, 슬리피지 때문에 수익이 아예 0 또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도 있다.
또 다른 예시로, 10,000달러를 투자해 2% 수익을 내려 했는데 **왕복 거래 시 슬리피지와 수수료로 1%**가 들었다면, 순이익은 1%에 불과하게 된다. 특히 단타 매매를 빈번하게 할수록 슬리피지 누적 효과는 커진다.
매매 횟수가 많으면 매번 체결 오차가 쌓여 연간 수익률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퀀트 트레이더나 초단타 매매자들이 슬리피지 최소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조금씩 여러 번 발생하는 슬리피지가 최종 성과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롱·숏 포지션을 잡는 선물거래에서는 슬리피지가 청산(강제 종료) 여부에도 영향을 준다. 내 계좌 유지율이 아슬아슬할 때 슬리피지 때문에 청산가격에 먼저 닿아버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레버리지 10배로 포지션을 잡고 5% 역방향으로 움직이면 청산이라고 할 때, 슬리피지 0.5%만 추가로 발생해도 청산 트리거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레버리지를 쓸수록 슬리피지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주문량이 증가함에 따라 슬리피지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시 수치로, 10개 물량 주문 시 슬리피지 0.1%에 불과하지만 50개 주문 시 0.5%, 100개 주문 시 2%, 200개 주문 시 5%까지 상승한다.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슬리피지가 급격히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그래프다. 실전에서도 주문 규모가 커질수록 슬리피지 비용이 커진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 막대그래프는 주문량 대비 슬리피지 비율의 변화를 단순화해 나타낸 것이다. 물론 실제 시장마다 곡선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슬리피지도 커지는 경향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거래하는 물량 수준에서 슬리피지가 얼마쯤 발생할지 계산해 볼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1BTC를 시장가로 살 때 0.1% 슬리피지가 나왔다면, 10BTC를 살 땐 1% 내외를 예상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처럼 슬리피지는 투자 수익을 갉아먹는 숨은 비용이므로, 손익 계산 시 반드시 고려하여 매매 전략과 목표 수익률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마치며
지금까지 코인 슬리피지의 자세한 개념을 알아봤는데, 앞으로는 시장가 주문의 대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자. 혹시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부탁한다!